[민사]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 70년 만의 국가배상청구 1, 2심 전부 승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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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26-03-17본문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적인 역사 속에서 억울하게 희생되었으나,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그 진실을 인정받지 못하고 고통 속에 살아온 유족들이 많습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성공사례는, 법무법인 재이가 한국전쟁 당시 국가의 불법적인 공권력에 의해 희생된 망인의 유족들을 대리하여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국가배상청구 소송에서 1심과 2심 모두 전부 승소한 뜻깊은 이야기입니다.
1. 사건개요
의뢰인의 아버님인 망인은 한국전쟁 당시,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인민위원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이후 수복 과정에서 부역 혐의로 치안대에 의해 불법적으로 연행되어 심한 구타를 당했고, 그 후유증으로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유족들은 수십 년간 부역자의 가족이라는 사회적 편견과 오해 속에서 말 못 할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다행히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를 통해 망인께서 적법한 절차 없이 희생된 사실이 인정되었고, 과거사정리위원회는 망인의 희생이 국가의 불법행위로 인한 것임을 확인하는 진실규명결정을 내렸습니다. 유족들은 이 결정을 바탕으로 국가의 책임을 묻고 고인의 명예를 회복하고자 법무법인 재이의 문을 두드리셨습니다.
2. 변호인의 조력
법무법인 재이는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문을 핵심 증거로 삼아 대한민국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국가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소송 과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피고 대한민국은 아래와 같은 주장을 하며 책임을 회피하려 했습니다.
- 과거사정리위원회의 결정은 신빙성이 부족한 참고인의 전문진술(전해 들은 이야기)에 근거한 것이므로 믿을 수 없다.
- 망인의 제적등본에 기재된 사망일자와 과거사정리위원회가 특정한 사망 시점이 일치하지 않으며, 오히려 제적등본에는 망인이 사망 추정 시점 이후에도 자녀의 출생신고를 한 기록이 있으므로, 망인이 그때까지 생존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에 법무법인 재이는 다음과 같이 적극적으로 반박하며 재판부를 설득했습니다.
첫째,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보고서는 국가기관이 방대한 자료와 진술을 토대로 내린 공적인 판단으로서, 특히 직접 증거 확보가 어려운 과거사 사건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유력한 증거’가 된다는 점을 법원의 판례를 들어 주장했습니다.
둘째, 피고가 문제 삼은 제적등본 기록의 모순점을 역으로 파고들었습니다. 한국전쟁 직후 혼란한 시기에는 호적 정리가 사후에 형식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고, 실제 제적등본 내에도 서로 다른 사망일자가 기재되는 등 내용 자체가 모순되어 신뢰하기 어렵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입증했습니다.
그 결과, 1심 재판부는 법무법인 재이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여 원고 전부 승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피고는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항소심 재판부 역시 피고의 주장을 모두 기각하고 1심 판결을 그대로 유지하여 법무법인 재이는 의뢰인에게 1, 2심 전부 승소라는 쾌거를 안겨드릴 수 있었습니다.
3. 본 사례의 의의
이번 판결은 단순히 금전적 배상을 넘어, 70년 넘게 묻혀 있던 역사의 진실을 바로잡고 고인과 유족의 명예를 회복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미가 있습니다.
국가를 상대로 한 국가배상청구 소송, 특히 수십 년이 지난 한국전쟁 관련 사건은 입증의 어려움으로 인해 결코 쉽지 않은 싸움입니다. 하지만 본 사례는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을 토대로 철저한 법리 분석과 논리적인 변론을 통해 국가의 책임을 끝까지 물을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법무법인 재이는 앞으로도 역사적 아픔을 겪으신 분들의 곁에서 억울함을 풀고 정의를 실현하는 든든한 조력자가 되겠습니다.